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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혼 백업/글 백업

약속 _00 (prologue)

by 갈로파 2015. 11. 1.


약속 

_00








검게 물든 곳마다 새로 흙을 뿌려 다져놓았다.

흔적을 지우려고 노력한 결과,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별로 티도 나지 않는다.


─ 정말?



외부인의 출입이 적어 오랜 시간을 아는 사람,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 아는 사람의 또 아는 사람…이렇게 이어져 왔었다.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았던 우리 마을은 어느새 꽤나 유명한 곳이 되어 있었다. 지금처럼, 마을에서는 본 적 없던 외부인들의 출입이 잦아지면서 '처형식'을 보러 오는 관광객들이 생겨났다.


관광객. 어디서 용케도 듣고 온건지 우리 마을의 또다른 수입원이 되어주고 있는 이들은 곳곳에 전시된 흉흉한 '전리품'들이 마음에 드는지 돈을 지불하고 가져가기도 한다. 비싼 '전리품'들을 현지에서는 좀더 싸게 살 수 있지 않겠냐는 물음에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전리품'을 외부로 가져가 팔아 넘기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들었다. 언제부터 우리는 사냥을 시작했던 것일까. 언제부터 우리는





"처형식이 시작될거다. 잘 봐둬."






원수의 최후라고. 어깨에 조용히 손을 올리며 말하던 그의 표정은 웃고는 있지만 썩 유쾌하진 않았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살짝 구겨진 종이 꽃 위에 입을 맞췄다. 모든 것을 원점으로. 모든 것이 원점으로. 든 것은 원점으로.




─ 정말?





사람들의 소리가 귓가에 웅웅 울려댔다. 기름에 타오르는 횃불 냄새조차도 메스껍다. 하얀 빛이 아름다웠던 너는, 어느새 피로 물들어 그렇게 힘없이 끌려온다. 눈이 타는 듯이 뜨겁다. 아니, 눈 뿐만이 아니라 너의 힘겨운 숨소리가 들리는 귀도, 역하게 올라오는 피비린내가 닿는 코끝도, 그리고 지워지지 않는 이 검은 흔적이 가득한 내 손도, 불타는 것처럼 뜨거웠다.



네가 원한 결말이 정말 이런 것인지 묻고 싶었다.











#



요괴의 피는 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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