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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혼 백업/글 백업

[히지긴] 장막 (To. 가란님)

by 갈로파 2015. 12. 22.
장막



네가 나에게 웃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다. 언제부터였을까, 너의 뒷모습만을 바라보며 그리 빌었던게. 너의 소중한 꼬맹이들에게 보이는 그 웃음이 나에게도 향했으면 좋겠다고. 나를 봐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좋아한다, 해결사. 그래서 무슨 용기였는지 너의 옷깃을 붙잡고 고백해버렸었다. 보기 흉할 걸 뻔히 알면서도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토해내버렸다. 너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우습겠지. 옷자락이나 꽉 잡고 눈조차 마주치지 못한 같은 남자의 고백은. 심지어 얼굴은 이 서늘한 밤공기 속에서도 열이 확확 느껴져 고개를 들 수도 없었다. 그런 나의 손을 천천히 감싼 네 손은 따스했다. 버럭 소리지르지도 않고 밀쳐내지도 않아, 혹시하는 한 가닥 희망의 싹이 비죽 고개를 들었다. 아아 ─그 순간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나를 향해 내가 그리던 그토록 애정어린 웃음을 띄운 네 모습에 넋을 잃고 말았다고? 너는 질색하는 곱슬거리는 은발에 마구 입을 맞추고 싶을만큼 너는 사랑스러웠다.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너는 분명히 웃었다. 그날 밤, 이불을 덮고 잠을 청하려해도 너의 모습만이 가득했다.




"저 세금도둑이 진짜!"
"어쨌든 잘 해결됐으니 기분 푸세요, 긴상."
"으으, 그래, 잘난 내가 참아야지…"




네가 웃는 게 좋아. 오늘은 어땠냐는 시시한 질문에 미소 띈 채로 눈을 깜빡이는 네 모습에 그제야 내가 하루종일 너와 같이 임무를 했다는걸 기억해냈다. 낮에는 서로 의견충돌이 있긴했지만 지금은 이렇게 은은한 달빛아래 서로의 손을 잡고 있었다. 힐끗 곁눈질로 너를 보다 눈이 마주쳤다. 재밌다는듯 웃는 너의 모습에 나는 얼굴이 벌게졌다. 민망하다. 얼른 고개를 돌려 중얼중얼 변명을 해댔지만, 내가 듣기에도 어이가 없어 이내 너를 따라 나도 웃었다. 이만 가볼게. 내 말에 너는 눈꼬리를 살짝 접은 웃음을 지었다. 먼저 일어나는 게 미안하니 내일은 제일 좋아하는 초코 파르페를 사줘야겠다. 단 걸 줄 때 웃는 모습이 정말 예쁘다. 요즘 늘 나를 볼 때면 웃어서 덩달아 나도 요즘 기분이 붕붕 들뜬 기분이다. 소고가 재수없다고 난리지만.




"히지카타는?"
"몰라요. 요즘 영 나사 하나 빠진 것 같다니까요."
"그래? 뭐 좋은 일이라도 있나보지."




너랑 내가 이렇게 함께라서. 너의 손을 잡고 나름대로 분위기 잡고 속삭였건만 너는 여전히, 그저 웃었다. 괜히 내가 부끄럽다. 너의 손끝에, 손등에, 손바닥에 차례로 입을 맞추었다. 내가 뭘 하든 살풋 웃음짓는 네 얼굴이 나를 귀엽게만 보는 것 같아 조금 오기가 생겨버렸다. 그래서 기습적으로 네 입술에 입을 맞췄는데 너는 여전히 웃었다. 아, 그래그래, 알았어, 알았다고. 난 아직도 적극적으로 못 덤비겠다니까. 이렇게 기습뽀뽀하는게 최선이니. 내가 졌다. 넌 어떻게 얼굴색 하나 안 변하냐?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아니지, 내 이미지에 안 어울리는 투정에 너는 또다시 웃었다. 또 그렇게 웃고만 있네. 그래도 예쁘니까, 사랑스러우니까, 나도 같이 웃었다.




"뭐야, 저녀석 …"
"응? 긴쨩, 왜그러냐, 해?"
"어딘가…아니다. 가자."




오늘도 웃고 있네. 내가 화를 내도, 짜증을 내도 항상 웃으며 받아주는 네모습이 그저 미안하고 고맙기만 했는데 지금은 네가 나를 사랑하는지, 나와 진지하게 만나고 있는건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그래. 그럴리가 없지. 그렇다고 하기엔 나를 향한 네 웃음이 항상 변치않는 걸. 매일같이 만나서 매일같이 비슷한 얘기를 해도 웃으며 받아주잖아? 그 지랄맞은 성격에도 나의 이런 부족한 모습까지 받아주는데 이런게 사랑이 아니면 뭐야? 옆에서 내가 무슨 고민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이렇게 지금도 나를 향해 웃어주고 있다고. 이런 사람을 의심하면 안 돼. 우린, 연인이잖아.




"여, 형씨."
"만, 소이치로군. 그리고"
"바보한테까진 인사는 필요 없어요."




오늘도 웃고만 있군. 무슨 말을 해도, 가 아니라 무얼 해도, 너는 웃고만 있다. 나를 사랑해? 나를 원해? 너는 정말? 튀어나오려는 온갖 의문들을 다시 삼키고 삼켰다. 너무 많은 걸 삼켜버려 체한 것만 같다. 속이 안 좋아. 은은하면서도 포근하던 달빛이 오늘따라 시리게 다가와 온몸을 찔러댔다. 말해, 말해, 말해, 네 입으로 말해봐, 물어봐, 어서, 어서, 어서. 날카롭게 벼린 은빛 칼날이 옆구리를 가슴을 푹푹 찍어댔다. 순간 사방이 희뿌옇게 가라앉았다 떠올랐다. 미안하다고 하며 벌떡 일어나 가버리는데도 뒤돌아본 너의 모습은 변함없었다.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결국 가던 길에 토해버리고 말았다. 어느새 구름이 잔뜩 뒤덮은 하늘아래 남은 빛이라곤 제대로 관리 안된 듯 자꾸만 깜빡이는 가로등 뿐이었다. 너무 앞서나가지 말자고, 히지카타. 앞으로. 앞으로 알아가면 되는거야.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내 앞에 서있는 너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오타에씨도?"
"아마시간이할 것 같은"
"잘 다녀다치진 말고."




왜 웃기만 하는거야? 삼 일. 매일매일 만나서 매일매일 아무 말 하지 않고 바라만 봤다. 너를 더 오래 더 많이 보고 싶다는 내 말에 너는 이제 낮에도 나와 함께했다. 나의 곁을 맴돌면서 내가 말을 걸지 않고 그저 내 할 일만 하는데도 불평 하나 없이 어울리지 않게 조용히 웃고만 있었다. 아주 조금도. 조금도…변함 없이 네가 웃는다. 네가 웃는다. 너는 그저 웃는다. 더이상 소리도 없고 변화도 없이 웃는다. 왜? 내가 의심해서 그런거야? 하지만 지금 너를 봐봐! 이 모습 그대로 너는 왜 그러는거야? 왜? 왜? 왜? 왜 웃고만 있는거야? 왜 웃기만 하는거야?

왜 너는 항상?

결국 꺼내지 못한 조각조각들을 다시 가슴 속에 꾹꾹 눌러담았다.



귓속을 왕왕 울리는 사람들의 소음에 머리가 아파왔다. 짙은 피비린내에 인상을 찌푸렸다. 또렷하진 않아도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렸다. 핏물이 주르르 흐르는 검을 천으로 슥슥 닦는 중에도 너는 내 옆에 그렇게 웃으며 앉아있었다. 나는 근처에서 나와 비슷한 모양새로 검을 닦고 있는 소고와 곤도씨를 힐끗 바라봤다. 다들 퍽 지친 모양이지만 며칠 째 해결사가 나와 함께하는데도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희안한 일이다. 너를 힐끗 바라보자 너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웃으며 마주한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저 웃는 얼굴에 약한 건 나다. 붉어진 얼굴을 감추려 이미 깨끗하다 못해 내 얼굴이 그대로 반사되는 검을 닦고 또 닦아댔다. 어색한 침묵 속에 때마침 야마자키가 뛰어와 큰소리로 외쳤다.




" 크게 다쳐서 병원으로 바로 이송한답니다!"





그 말에 잠시 검을 닦던 일을 멈췄다. 소고는 하여간 오지랖들은 넓다며 어깨를 으쓱 할 뿐이었고 곤도씨가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급하게 야마자키가 지금 누가 어떻고, 상황이 어떻고를 줄줄이 읊어대고 있을 때, 나는 검에 비쳐진 내 모습에서 눈을 돌렸다. 어느새 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나와 눈을 마주치는 너는 여전히 웃고있었다.




"그 녀석들 하여간 여기저기 사고를 몰고 다닌다니까. 한동안 여기저기 빨빨대진 않겠군."
"의뢰를 빙자한 여행으로 생각하더니, 쯧. 뭐, 죽진 않은 모양이던데요?"
"그렇게 쉽게 죽을 놈들은 아니잖아?"
"그거야 그렇죠."




─아.




"여어, 토시. 뭘 그리 멍하니 있어?"
"요즘 히지카타씨 정신 빼놓고 다닌다니깐요? 혼자 뭘 그리 실실 쪼개는지."




너는 그순간 조금 더 짙게 웃음짓는 것 같았다. 그만 인정해, 히지카타. 너도 알잖아? 웃기만 하는 너에게서 그런 말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바보라니까, 히지카타는. 나는 분명 너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여전히 너는 변함없이 웃고만 있었다.

너는.

너는사실



*


"망할 차이나, 아직도 안 뒤지고 살아있었네."
"헹, 난 그정도로 안 죽는다, 해!
"형씨는?"
"긴쨩은 아직 더 쉬어야한다고 의사가 그랬다, 해. 
자꾸 도망치려고 해서 타에누님이 지켜보고 있다, 해."
"형씨 얼굴 못 본지 한참인데 잘못하면 영원히 못보겠군."



*


매일매일 만나서 매일매일 한결같이
너는 나에게 그렇게 웃어주었다.


*


오랜만, 소이치로군. 그리고 오오구시군.


*



그만 인정해. 히지카타.



*






─무엇을?



*






오늘은 별로 할 얘기가 없네. 소고 그자식은 또 근무 중에 땡땡이 쳤고, 곤도씨는 스토킹질에 야마자키는 배드민턴 채를 나한테 날렸어. 실수라는데 아무리 봐도 고의성이 다분하단 말이지? 아. 말하고나니 별로 할 얘기가 없긴, 무슨. 다들 이러면서 나한테 일 떠넘기고 말이야, 피곤하다니깐. 그래도 네가 그렇게 웃어주니 힘이 난다. 고마워. 손을 뻗어 네 복슬거리는 머리칼을 넘겼다. 네 입술에 조심스레 내 입술을 포개었다. 너도 나도 절로 얼굴에 웃음이 피어났다. 사랑하는 사람의 애정어린 미소, 웃음이 온전히 나를 향할 때. 나만을 향할 때. 그건 정말 떨치기 힘든 달콤함이다.

깨어나고 싶지 않은 지독하게 달디 단 꿈속을 유영하는 것 같다. 혀끝에서부터 마비시킬듯한 달콤함에 서서히 중독되어버려 이젠 돌아갈 수 없었다. 사실 난 너와 손을 잡고 너와 함께 하루를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고 기쁘다. 미쳤다고 할지라도, 난 다시 돌이킬 수 있든 없든 너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난 네가 웃는 게 가장 좋다. 

언제나 그렇게 웃어줘. 나를 향해. 사랑할게.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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