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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혼 백업/글 백업

[오키긴] 낮잠

by 갈로파 2015. 12. 24.

[오키긴] 


낮잠






요즘 잠을 잘 못 잔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이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형씨, 몰골이 굉장한데요?"


"시끄러워."


"안그래도 동태눈인데 더 볼품없어졌네요."


"시끄럽다니까."




긴토키의 눈밑이 시커멓게 죽어있었다. 안그래도 죽은 동태 눈깔이라고 놀렸는데 이건 정말 죽은 동태가 썩어도 몇 년은 썩은 것 같다. 푹 꺼진 꼴이 안쓰러워 오키타는 긴토키의 손을 잡아 끌었다. 피곤에 찌든 얼굴로 뭐하자는거냐며 짜증내긴 하지만 순순히 따라와주었다. 오키타는 자길 믿고 따라오라며 길을 벗어나 수풀 안쪽을 헤집어 들어갔다. 경찰이 지금 땡땡이 치고 어디까지 가는거냐며 투덜대는 긴토키의 손을 꽈악 잡으며 조용히 좀 따라오라고 한 소리하자 불퉁한 얼굴로 당장이라도 받아칠까말까 고민하는 모양새가 뻔히 보였다. 저 시커먼 몰골로도 제눈인 귀엽게만 보인다니, 단단히 미친게 분명하다고 속으로 한숨쉬며 오키타는 거의 다왔으니 얌전히 따라오라 하였다.




"저만의 낮잠 명소라구요."


"웬 낮잠 명소"




긴토키는 꼬맹이가 나만의 아지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하며 비밀스러운 초대랍시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 같아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왜 웃냐며 어울리지 않게 민망해하는 오키타의 레어한 모습이 수면부족으로 머릿속까지 띵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본능적으로 '이건 기억해야된다! 뇌에 박아놔야 돼!' 싶었나보다. 웃는 와중에도 최대한 오키타를 제대로 보려고 노력하고 있어 오키타의 어깨를 잡고 끅끅 웃다가 다시 얼굴을 보다가 또 웃어대는 괴상한 광경이 계속되었다. 오키타는 그만 좀 웃으라며 결국 긴토키의 정강이를 걷어차버렸다.


어디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 보자고. 긴토키의 웃음기 어린 말에 오키타는 쳐자느라 집에 못들어가지나 말라며 자신감을 보이자 긴토키는 다시 푸흐흐 입꼬리를 올렸다. 도S주제에 귀엽다니. 역시 어려서 그런가. 오키타가 편하게 관리가 제대로 안된건지 가지가 길게 늘어진 나무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고 긴토키가 들어오기 편하도록 가지를 붙잡아주었다. 언뜻 보기엔 나무들이 우거져보이던 곳이었는데, 조금 들어가니 이내 꽤 널찍한 공간이 나왔다. 나무잎으로 그늘진 곳엔 오키타가 자주 애용하는 곳이 맞는지 사람이 누운 자리엔 풀이 뉘여있었다.


저절로 감탄사가 나오는 곳이었다. 마치 동화속 삽화처럼, 나뭇잎들 사이로 너무 강렬하지도, 눈부시지도 않은 따스한 햇살이 금가루처럼 부서져 둘을 감싸안았다. 멍하니 서있기만 하는 긴토키를 깨운 오키타의 부름에 고개를 돌리자 나무그늘에 누운 오키타가 이리 오라며 제 옆을 툭툭 쳤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만 끔뻑이는데, 팔베개라도 해줄 요량으로 팔까지 한쪽 뻗고 있는건 … 긴토키가 그건 좀, 하며 어색하게 웃으니 오키타는 퍽 귀찮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제 상의를 벗어 옆에 깔아주었다.




"바보 주제에 까다롭게 따지긴.

─아, 이건 혼잣말 입니다."


"…다 들었거든."




그리고 풀물 드는게 문제가 아니거든. 그럼 문제될게 없네요, 하며 어서 옆에 오라는듯 싱글싱글 웃는 뻔뻔한 낯짝이 시키는 대로 따라주긴 얄밉기 그지없어서 긴토키는 얌전히 옆에 다가가나 했더니 그대로 오키타의 배위에 머리대고 누워버렸다. 이리저리 부비적거리며 아기배에 숨 불어대듯 장난치자 으헉, 숨을 훅 들이쉬는 오키타에 낄낄대며 얌전히 좀 있으라며 가슴팍 툭툭 쳤다. 성인 남자 머리통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을 거다, 요녀석아. 긴토키가 마치 승리자의 표정으로 적당히 말랑하면서도 단단한 오키타의 배 위에서 꼼지락대며 제일 편한 위치를 잡았다. 따뜻한 체온, 익숙한 체향, 적당히 시원한 그늘과 바람에 저절로 하아 ─ 기분 좋은 숨을 내쉬었다. 오키타는 자기 배에 닿는 따뜻한 바람에 피식 웃었다. 그러자 갑자기 왜웃냐며, 꿀렁거린다고 긴토키가 킥킥거렸다.




"형씨가 웃을 때마다 숨쉬기 힘들어지니 작작 웃으시죠."

"아아,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와서 재울 기특한 생각이었으면 끝까지 책임을 지셔, 베개씨. 딱 좋으니까 그대로 얌전히 있어달라구─ "




위에 머리대고 누워서, 숨을 쉴때마다 따라 움직이고 숨을 쉴때마다 느껴지는 긴토키의 무게감에 나쁘진않다고 생각했다. 좋다, 며 눈을 감은 긴토키에게 손을 뻗어 눈가를 쓰다듬었다.




"왜?"



지치고 피곤함에 축 가라앉아있던 눈빛이 지금은 조금 말갛게 생기가 오르는 것 같았다. 뺨을 토닥이니 긴토키는 말없이 손을 겹쳐잡았다. 오키타는 잠을 못자 푸석한 뺨을 붙잡힌 손을 움직일 수 없으니 대신 손가락으로 살살 간질이다 긴토키가 짜증내기 직전에 그만두었다. 뭐라고 궁시렁대는 긴토키를 귀엽게 보던 오키타는 피식 웃더니 자기 안대를 꺼냈다.




"잠시 일어나봐요."


"아, 왜애─"


"고개만 살짝 들면 되니까."




오키타는 긴토키에게 손수 안대를 씌워주었다. 언제 투덜댔냐는 듯 오키타가 안대를 씌워주자 감탄하며 이제 똑바로 누워서 잘 수 있겠다며 다시 꼼질꼼질 몸을 움직였다. 마침내 가장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자리를 잡은 듯 흐뭇한 표정으로 웃는 모습에 오키타도 결국 살짝 웃었다. 크게 웃었다간 형씨가 또 뭐라 할게 뻔하니 크게 웃을 수도 없고. 행복한 불만을 긴토키의 머리칼을 쓰다듬는걸로 대신하기로 했다.




"햐, 이거 좋은데? 이래서 대낮에도 아무데서나 잘 자는거냐?"


"시끄러워요. 입다물고 잠이나 자요"




긴토키는 머리칼을 살살 만져주자 잠 안온다며 찡찡댔으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입이 살짝 벌어진 채 숨을 색색이며 잠들어버렸다. 안대 덕분에 딱 잠들기 좋게 어둡고, 이불처럼 부드러운 햇살이 덮이고, 바람은 시원하게 코끝을 감돌았다. 오키타가 머리칼을 만져주니 절로 몸에 힘이 나른하게 풀려왔다.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작은 움직임과 사람의 체온에 안정감을 느끼다보니 어느새 잠이 솔솔 몰려왔다. 좋구나. 바람결에 은은하게 느껴지는 오키타의 체향에 긴토키는 웃음을 지었다. 아주 오랜만에 느껴보는 안락함이었다.









오키타는 숨소리만 들리는 긴토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머리칼을 만지던 손을 내려 긴토키의 가슴팍에 손을 올렸다. 규칙적으로 쿵쿵대는 심장의 박동이 손바닥을 울렸다. 가슴에 닿은 따스한 손길에 긴토키가 뒤척이다 몸을 살짝 옆으로 틀면서 한 쪽 손을 오키타의 가슴 위에 올렸다. 불편한지 갈피를 못잡고 뒤척이다 오키타의 손을 잡았다. 오키타는 자신의 심장부근에 귀를 대고 누운 긴토키의 얼굴이 자신이 해준 안대에 가려있으니 아주 잠시 괜히 해줬다고 느꼈다. 얼굴보고싶은데…. 그래도 곤히 자는모습이 워낙 평상시의 모습과는 달리 말 잘듣는 어린애 같아 ─ 저것도 좀 귀엽네 ─ 이대로 푹 재우기로 했다. 잘 재우고 잘 먹여서 다시 보들보들해진 피부를 맛보고 싶으니 조금은 참아야겠지.



오키타는 긴토키의 심장이 손으로 느껴졌고 긴토키는 비록 자고있지만 분명 귀로 오키타의 심장 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다. 자장가처럼 들릴까? 그리 조용하진 않을텐데. 오키타는 자기보다 조금 큰 긴토키의 손이 제 손을 살짝 잡고있는걸 가만히 바라보았다. 제 손등을 이따금씩 움찔거리며 간질거리게 만드는 주범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그 아래에서 방향만 틀어 마주잡았다.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맞닿은 손에서도 작은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오늘은 참 좋은 날이다. 아주 좋은 날.

낮잠 자기엔 딱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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